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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제자들이라고 소개했더니 부모님께서 너무 감사한 인연이라고 하셨어요. 결혼식 내내 눈물이 안 났는데,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릴 때도 울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을 보고 눈물이 펑펑 났어요. 고맙고, 미안하고, 대견하고···. 어쩌면 내가 이 친구들 삶에서 작은 위로가 됐구나. 하나의 기억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4년 이효정글북
경씨는 서른 즈음의 늦깎이 대학생이었다. 학교 게시판에서 ‘단원고 3학년 회복을 위한 점프 학습 멘토링 프로그램’ 모집 공고를 보고 소셜 벤처 ‘점프’의 교육봉사에 참여했다. 경기도교육청이 점프에 요청을 해왔다. 단원고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장학샘’이라 불리는 대학생 50명이 주 2회, 오후 5시 서울 사당역에 모여 임시버스를 타고 경기KT서브마린 주식
도 안산 단원고로 향했다. 이들은 고3 학생들의 입시 준비를 도왔다. 영어 과목을 맡은 이효경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단원고 3학년 학생 228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해 6월에서 11월까지 이씨는 ‘멘티’였던 아이들 여덟 명과 영어를 공부했다. 기출 모의고사 문제를 풀고 오답을 체크했다.호남석유 주식
아이들이 쉬고 싶어 하면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눠 먹고, 진로나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6개월 동안 아이들 곁에 있었고, 수능 이후에도 꾸준히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때 만난 졸업생 정현욱씨는 현재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수학여행을 떠난 동아리 2학년 후배 10명 중 8명이 돌아오지 못했빅솔론 주식
다. 정씨는 “그때, 우리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됐다”라고 말한다.


“(사진 학원) 졸업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효경쌤을 초대했습니다. 쌤이 졸업전에 찾아와서 응원해주고 축하금도 주셨어요. 다시 제 꿈을 찾아갈 수 있었던 건, 저를 응원해준 사람이 있어서였어요. 자신의 경험을 JYP주식
나눠준 따뜻한 분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갈 용기를 얻었으니까요.” 정씨는 ‘효경쌤’의 결혼식에 참석한 여덟 명 중 한 사람이다.




점프 창업자 이의헌씨와 은초롱 점프 대표(오른쪽). ⓒ시사IN 조남진



이 이야기는 ‘점프 15년’을 기록한 책 〈우린 좋은 어른이 될 거야〉에 수록되었다. 점프(JUMP, Join Us to Maximize our Potential)는 2011년에 창립한 비영리 교육 소셜벤처다. 대학생(‘장학샘’)을 선발해 지역아동센터 등에 파견한다. 1년 동안 주 2회(4시간 이상), 아이들에게 필요한 공부를 함께한다. 점프는 장학샘과 청소년이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맺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아이들은 금세 떠날 교육 봉사자에게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대학생은 200만~300만원의 장학금을 받고, 점프의 ‘사회인 멘토’로부터 일대일, 소그룹, 단체 멘토링을 통해 진로 상담 등을 받는다. 청소년-대학생-사회인이 함께 학습과 진로를 돕는 삼각 멘토링 모델이다. 지난 15년 동안 점프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소년은 2만6195명, 대학생 봉사자는 7384명에 달한다. 이들이 함께한 학습·신체 활동 시간은 464만291시간이다. 점프 프로그램이 운영된 지역아동센터 등은 누적 1398곳에 이른다.

모두 성장할 수 있는 방법

이러한 성과의 출발선에는 창업자 이의헌씨(50)가 있다. 이씨는 2001년부터 8년간 〈미주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대학 졸업 후 공채에 합격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민자·이주노동자로 살았다. 8년 동안의 취재 경험은 차별·불평등·다문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탈북자를 취재했다.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가 차별을 겪은 탈북자들이 미국으로 망명 신청을 해서 받아들여졌다. 그 수가 200명이 넘는다. 기자 이의헌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고통받는 청년과 어린이들을 현지 취재하면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외부 환경에 의해 삶이 결정된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전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자 생활을 접고 하버드 대학 케네디스쿨에 진학한 이유다.


한국에 돌아가 교육 기회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꿈을 가졌던 그는 청소년-대학생-사회인을 연결하는 삼각 멘토링 모델로 케네디스쿨 졸업 논문을 썼다. 농촌 운동과 야학 그리고 정부·기업이 주도하는 대학생 봉사단까지 여러 교육 봉사 프로그램을 살펴보았다. 몇 가지 문제점이 보였다. 참여자의 희생에만 의존하거나, 성과에 집착해 단기 프로그램에 집중하거나, 대학생 한 명이 100명 앞에서 강의를 하는 식으로 ‘보여주기’에 치중해 있었다. 그는 장기적 관계에 기반해 참여자들이 모두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이의헌씨는 “대학생은 청소년을 가르치는 동시에 사회인 선배의 도움도 필요로 한다. 대학 동아리에서 졸업한 선배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라. ‘청소년-대학생’ 관계에 ‘사회인 멘토’를 추가했다. 서로 도움을 주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장학샘’으로 선발되면, 1년 동안 주 2회(4시간 이상) 지역아동센터에서 학생 네 명가량을 맡아 가르친다. 학습뿐만 아니라 곁에서 아이들의 고민거리도 들어준다. 점프 커뮤니티를 통해 관심 분야에 진출해 있는 사회인 멘토와 만나서 삶과 일의 경험을 나눈다. ‘사회인 멘토→대학생→청소년’ 식으로 도움이 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지만, 상호관계에서 에너지와 동기부여를 주고받는다.




대학생인 ‘장학샘’은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 네 명을 주 2회(4시간 이상) 가르친다. ⓒ 점프 제공



그의 구상에 공감한 케네디스쿨 동기 여섯 명이 공동 창업자로 참여했다. 초기부터 매월 10만원씩 후원하며 운영을 도왔다. 삼각 멘토링 모델이 지속 가능하려면 기부·후원자 역할이 중요한데, 현대차그룹·서울장학재단 등이 지원에 나섰다. 점프 3년 차부터 재정적으로 숨통이 트였다고 한다.


점프의 주 활동 거점은 전국의 지역아동센터다. 보건복지부에서 지원을 받는 센터는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아동·청소년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내실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던 차에 점프가 대학생을 파견해 그 일을 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처음부터 환영 일색이었던 것은 아니다. 점프 초창기에 이의헌씨는 지역아동센터를 찾아 발품을 팔았다. ‘공짜로 대학생들을 보내 학습 지도를 하겠다’고 했더니, 절반은 사기꾼 대하듯 했다. 나머지 반은 믿어주었는데, 이야기를 다 듣고 이렇게 묻곤 했다. “혹시 정치하려고 그래요?” 반신반의하던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들이 프로그램을 해보고 나서 다른 곳도 연결해주었다. 지난해에는 전국 각지 167곳이 점프와 함께했다. 베트남·인도네시아의 현지 NGO가 이 삼각 멘토링 모델을 이용해 현지 청소년 교육에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점프는 지역아동센터 관계자가 ‘장학샘’ 선발 과정에 참여하도록 권장한다. 지역아동센터가 아이들 특성에 맞는 인재상을 제시한다. ‘장학샘’ 지원자들이 이를 보고 센터를 선택해 응모한다. 수도권의 경우, 경쟁률이 5대 1가량 된다. 지역아동센터 관계자가 면접에 참여해 아이들과 잘 어울릴 만한 응모자를 선발할 수 있다. 사무국에서 뽑고 배정하는 공급자 중심 방식이 아니라, 지역아동센터 관계자가 자신들의 사정과 어울릴 만한 사람을 선택하는 수요자 중심 방식이다. 센터마다 최소 4명에서 최대 6명의 ‘장학샘’이 파견된다. 누구는 스펙 때문에, 누구는 장학금 때문에 신청한다. 지원 동기는 다양하지만 현장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하며 진심을 다하는 장학샘을 닮아가려 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점프 사무국은 대학생 포기자 비율을 5% 미만으로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점프 커뮤니티가 한자리에 모인 연말 네트워킹 행사 모습. ⓒ 점프 제공



현재 점프 사무국의 인원은 36명. 2014년에 1호 직원으로 입사했던 은초롱씨(39)가 대표를 맡고 있다. 창업자 이의헌씨는 CWO(Chief Why Officer)를 맡고 있다. W는 ‘왜’를 뜻한다. 은초롱 대표는 “요즘 NGO, 소셜벤처 등 비영리 업계에 어떻게(how)와 무엇을(what)만 있는 것 같다. CWO는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왜 필요한지를 계속 이야기하는 자리다”라고 설명했다.


점프는 최근 15주년 기념으로 단행본 〈우린 좋은 어른이 될 거야〉(옐로브릭 펴냄)를 발간했다. 그동안은 본업에 집중하려고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10주년 때쯤 책을 낼까 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대내외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담당하는 강승민 점프 CCO(51)가 점프와 인연을 맺은 청소년 멘티, 대학생 장학샘, 사회인 멘토, 지역아동센터 관계자 등 16명을 인터뷰해 책으로 엮었다. 은초롱 대표는 “점프는 사무국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참여자들을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분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우리와 함께했던 친구들이 10년 뒤, 15년 뒤에 어떻게 성장했는지 다 조명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좋은 대학’ 아니라 ‘좋은 어른’

강승민씨가 집필 책임을 맡았다. 기자로 오래 일하다가 인생 후반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겠다는 각오로 새 직장을 찾아 대형마트에서 피자 굽는 일을 했다. 점프에는 2020년에 합류했다. 그는 점프가 마련한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는지가 궁금했다. 점프 매니저들에게 기억에 남는 사람들을 추천받았다. 한 장학샘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청소년 멘티를 만났다. 그렇게 지난해 하반기 아이·어른 16명을 만났다. 그들에게 묻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만난 아이들은 누구인가, 외롭고 상처받은 아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타인을 돌보고 응원하는 경험은 우리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그는 점프 참여자들을 만나서 있는 그대로 들으려고 했다.


‘헌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장학샘 박성학씨는 처음 센터에 간 날, 바닥에 멍하니 누워 있던 한 십대 아이를 떠올렸다. 불러도 반응이 없던 아이는 관계가 쌓이자 어느 날 책상에 앉았다. 아이는 마음을 열었고, 특성화고에 진학해 제과제빵 일을 시작했다. 고1 때 자신을 응원했던 수학 선생님을 떠올리며 박성학씨는 “아이들을 만날 때만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제가 마치 ‘좋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강씨는 ‘누워만 있던 그 아이’ 혜승이를 만났다. 혜승은 이렇게 말했다. “쌤은 그때 정말 진심이었어요. 정해진 시간이 끝나면 돌아가도 되는데, 왜 저렇게 열심히 하는지 이상했어요. ‘왜 사서 고생을 할까. 우리들이 뭐라고?’ 나처럼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면 그만인데, 뭐가 있기에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는지 궁금해졌어요. 쌤은 제가 처음 만난 ‘좋은 어른’의 모습이었어요. 쌤만큼 헌신은 못하겠지만 나에게, 또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나누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장학샘’은 사회인 멘토와의 단체 멘토링을 통해 취업·진로 고민을 나눈다. ⓒ 점프 제공



2024년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10명 중 8명이 사교육을 받는다. 저소득층 청소년의 둘 중 하나는 사교육을 받지 못한다. 점프는 교육 기회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과 책상 앞에 마주 앉는다. “좋은 대학을 보내는 것보다는 좋은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는 데 우리의 일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은초롱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은 대표는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타인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가는 과정이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점프 15년의 기록을 담은 〈우린 좋은 어른이 될 거야〉를 읽다가 여러 번 마음이 움직였다.


※점프 프로그램 참여자의 말은 〈우린 좋은 어른이 될 거야〉에서 그대로 따왔다.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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